세월호 아이들과 국민들 처지 다르지 않다 (2014.07.24)

 

유가족 박은희 전도사, 세월호 100일 추모예배서 진실 묻히는 현실 개탄

 

‘세월호 100일 추모예배, 이웃사랑 핵심은 약자 사랑’ 기사에서 예고한 대로, 100일 추모예배에서 있었던, 희생학생 고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기독교대한감리회 화정교회)의 증언을 기사화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304명 가운데 교회학교 학생은, 개신교학생 76명(단원고74, 유치부2), 카톨릭학생 17명(단원고17), 도합 크리스챤 학생 93명이 희생되었다.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성도들의 자녀들이 수장되어, 안산의 대부분의 교회가 통곡의 장이 되었으며, 희생된 학생들 가운데는 목회자의 아들과 딸, 전도사의 딸, 장로들의 자녀들도 포함돼 있다.

 

▲ 세월호로 희생된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제단에 올라 증언하고 있다

 

저희 부모들이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처음 해본다.” 입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저도 처음이고, 전도사지만 많은 분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굉장히 떨립니다. 사실, 이 길을 안 갈까… 진급 과정 밟다가 멈추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떠한 뜻으로 저를 문제의 한 가운데, 소용돌이 속에 저를 부르셨는 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의 또 다른 섬 – 고립

 

요즘 부모들은 얼떨떨합니다. 왜 우리 아이들이 이런 일을 겪었는지 그리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서명을 하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법조인과 정치인을 만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방송국이나 청와대 앞이나 국회의사당 앞을 왜 가야 하는지, 또 어제 오늘 이틀간 도보순례를 하면서, TV에서나 보던 일들을 하게 된 부모들은 지금 다 얼떨떨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아이가 옆에 없다는 게 제일 얼떨떨 합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희가 제일 무서웠던 건, 고립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을 찾아가셨는지 이제는 이해가 좀 되더군요. 우리는 또 다른 섬이 하나 되었구나. 진도에 있는 동안 부모들은 정부로부터 버려졌고, 언론에 의해 철저히 국민들로부터 고립이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런 고립이 정말로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말고도 이 한국 땅에, 저희와 같은 ‘고립된 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나서, 그분들한테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정권과 기업들의 유착. 너무나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과 체계적이지 못한 그런 구조. 심지어 진도에서 시동생이 말하기를, “잠수사들이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조차도 경찰들한테, 이 물건 좀 저 트럭에 실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고 이야기 했더니, 저희들은 명령이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로부터 명령이 내려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이런 수직하달식 구조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의 녹봉을 먹고 있는, 정부의 각 공무원들이 위로부터 하달이 떨어지기 전에는 생명을 건져야겠다는, 살려야겠다는 그런 행동조차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특별히 오늘은 예배의 자리에 제가 왔기 때문에, “교회의 민낯을 보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랐고, 교회를 너무나 좋아하고 정말 제 인생의 70~80%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신랑을 만났고,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학업도 마치고 했습니다. 저의 자랑이자 저에게는 자궁과 같은 존재가 바로 한국교회 입니다. 반면에 제 남편은 한국교회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게 저는 늘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고,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어? 뭔가 문제가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 세월호 참사 100일을 추모하며 향린교회에서 기도드리고 있다.

 

저희 유족들이 분향소를 차리고 조문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왔다 갔습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 각 단체들이라든지 특히 종교계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근데 그때 버스를 대절해서 조문을 온 곳은 천주교뿐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전국 각 지역의 성당에서 버스를 대절해 함께 와서 조문을 하고 서명도 해주고, 또 유가족들이 머무는 곳으로 와서 힘내시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가셨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것도 실례가 될까봐, 먼발치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명을 받으러 갔을 때도, 저희 유족들은 주로 성당에 머물렀습니다. 심지어 어떤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시청에서 합동 분향소를 마련하지 않자, 성당 안에 분향소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 가운데서도 성당에 가서 유가족들의 입장을 대신 말한 경우도 많습니다. 신부님이 직접 이야기를 하거나 또는 유가족을 통해서, 정말 지금 유가족의 상황이 어떤지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어느 부모님이 이번 일을 겪으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힘든 가운데 얻은 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저희가 가는 곳마다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시민분들이 또는 단체에서 또는 교회나 성당, 불교 여러 종교단체에서 저희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우리는 평생 이분들한테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 된다.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다음 두번째 말이, 제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습니다.

이제 유가족들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깨달았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저는 순간 불안했습니다. 우리 교회들은 어느 쪽일까. 참일까? 거짓일까? 혹여 ‘거짓일까?’라는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우리 교회가 깨어서 정말 진실을 말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유가족들과, 또 유가족을 통해서 이번 일을 함께 겪으면서 느낀 우리 국민들. 더불어 이 아픔과 원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요, 많지 않더라고요.

정말 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참이다.’라고 이야기 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들께서 모이셨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착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저는 저희 딸에게도 늘 강조한 말이 있는데, “착하게 살아라.”, “남을 배려하면서 살아라.”라는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은이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지금도 아파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웃는 애였는데… 또 예은이가 가수가 꿈이라 뮤지컬학원을 다녔는데, 아이가 작년부터 일기를 8개월 동안 썼더라고요. 일기에 고민을 썼는데, 자기는 웃는 상이라 연기를 할 때 우는 연기를 하면 다들 뭐라고 그런다고, 그게 고민이라고 썼더라고요.

정말 예은이는 엄마가 얘기해준 대로 착하게만 살려고 그랬고, 자기의 아픔이나 고민이나 분노나 그런 것은 다 감추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착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착한 사회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내가 착한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이런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왼쪽상단부터) 유가족 단식 천막 앞에선 극우단체 엄마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독교장로회 단식 기자회견,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 행진, 세월호 참사 100일을 추모하는 민주쟁취기독교행동 시가행진

 

고립 – 세월호의 아이들과 이 나라 국민들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계속 기다렸습니다. 지금 영상도… 저희 부모들을 특별법이 제정이 되면, 그때 제출하려고 수많은 자료들을 지금 꼭 껴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풀어놨다가 또 어떤 식으로 왜곡하고 숨기고… 이런 걸 저희가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회의 할 때도 국회에서 회의하다가도 CCTV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게 됩니다. 유가족들이 하도 많이 겪었기 때문에, CCTV 옷으로 먼저 가리고, 또 기자들이 나간 뒤에는 혹여 가방에 마이크 녹음기가 있을까봐 가방도 다 내놓습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저희가 진도에서부터 오늘 지금까지, 수많은 사찰과 또 증거인멸, 그리고 도보순례가 어제부터 진행이 됐는데 – 일절 공영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나라입니다. 근데 더 무서운 건, 국민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세월호에 갇혀있던 우리 아이들의 형편과 지금의 국민들의 형편이 다르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끝까지 어른들을 믿었습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 아이들이 뛰어내리지 않은 건, 아이들이 있었던 곳이 높이가 4층 입니다. 여러분 4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수 있습니까? 바다 수면에서부터의 높이는 5층 정도 됩니다. 5층에서 여러분 뛰어내릴 수 있습니까? 아이들은 사고 직후, 아침에 나가서야 그 높이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 전날은 깜깜한 밤이었고요. 그리고 8시 한 10분 20분까지 그곳에 있다가 방송을 듣고 다시 내려간 겁니다. 내려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못 나온 거죠.

안에서 아이들이 계속 이야기 합니다. “밖에 있는 애들은 어떡하지?” 담배 피러 나간 애들도 있었거든요. 어떡하지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방송과 함께 한 명이 움직이면 다 움직이게 되서 위험하다는 말을 아이들이 합니다. 나 하나 때문에 이 질서가 흐트러질까봐 꼼짝을 안하고 아이들이 서로 기다리는 거죠.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봐.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의사자의 의미

 

아이들이 이렇게 죽었습니다. 부모들은 너무 갑갑합니다. 아이들은 분명히 그저 놀러가다 죽은 게 아닌데, 세간에는 놀러가다가 죽은 것이라며,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러냐. 심지어 교통사고에도 비교 당하게 됩니다. 또 조류독감에도 비교 당해 봤습니다. 지금 부모들 마음은 갈래갈래 찢겨지다 못해 아물지도 않은 상처에 굵은 소금이 부어진 것 같은 그런 심정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 그냥 여기서 다 끝내고 그냥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제일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도보순례까지 하면서 악다구니 쓰면서, 너무나 낯설은 이런 정치인들이나 여러 단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하고 어떡하든지 특별법을 만들려고 저희가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의사자 문제 때문입니다.

어느 정치인이 그러더군요.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 의사자다. 그래서 제가 어제 맞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의사자 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생각하는 의사자는 정치인들이나 세간에서 해석하는 그런 의사자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조류독감처럼 교통사고처럼 놀러가다가 그냥 바보같이 탈출도 하나 못해서 죽은 아이로, 그렇게 매도돼 이 사건이 끝날까 두려운 마음 때문입니다.

무려 304명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생명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이 세상이 정말 저는 무섭고 두렵습니다. 또 거기에 정치인, 그리고 정부 지도자들, 급기야 종교계 지도자들까지 그 무리에 끼어있다는 것 자체가 – 이 시대의 제일 큰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것은 국립묘지에 가거나. 전 처음 알았습니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뭐 돈이 나온다는 거.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돈으로 셈해서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저희가 의논하는 과정 중에서 일부 부모들 중에 그 의사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찬성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초반에 말씀드렸듯이 저희가 모든 게 처음이기 때문에 수십 번 회의를 했습니다. 어떨 때는 매일 회의를 하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회의를 합니다. 500여명의 학부형들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합니다. 몇 번을 싸우고 언쟁을 하고 해서, 저희들이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진실이냐 돈이냐. 부모들은 결론 내렸습니다. 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들 특별법에는 여야가 제안했던 의사자나 대입특례는 제외돼야 한다. 그래서 우리 유가족들이 만든 특별법에는 제외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위 위원장을 맡은 사람마저도 “가족들이 원한 것”이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제는 남편도 하도 말해서 입이 다 아프다고 이야기합니다.

유가족들이 아무리 말해도 언론에는 보도되지도 않고, 계속 정치인과 공영방송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계속 유가족들을 돈에 미친 정신 나간 부모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더 악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정말 저희 아이들이 개 같은 죽음이 되겠구나. 우리 아이들이 의미 있는 죽음이 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여러분들이 함께 행동해주셔야 합니다.

 

▲ 이날 시청 앞 광장에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의 증언을 직접 듣기위한 시민들로 가득하였다.

 

304명 생명의 무게를 짊어진 유가족과 그리스도인들

 

304명의 아까운 목숨들이 정말 진하디 진한 시커먼 먹물이 되서…(한숨.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함). 참사 전과 후를 분명하게 가를 수 있는, 획을 그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많지 않은 것 압니다. 저희가 1박2일 도보순례하면서 느꼈거든요. 소수만 공감하지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미 언론에 넘어가 있습니다. 그들을 깨우치는 책임이 여러분들과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일당 백 일당 천 일당 만이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여러분도 힘드시겠지만 저희도 더 힘을 낼 테니까, 더 이상 이 나라가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여러분이 함께 기도해주시고, 함께 경종을 울려주시고, 함께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당당뉴스 박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