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회 강북지방 기독교 독립운동 사적지 ① 이준 열사 묘역

 

이준(1859.01.21.~1907.07.14.) 열사를 고종황제의 헤이그 밀사로 유명한 감리회 상동교회 청년회장 출신의 인물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은 대한제국의 제1호 검사(檢事)로서 법관이며 외교관으로서 국제정세를 꿰뚤어보던 인물이었다.

 

 

1907년 고종황제가 당시 개신교 감리교회의 지원을 받아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였던 사건으로 네덜란드 헤이그로 파견된 밀사는 3명이 아닌 총 4명으로 감리회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위의 3인이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네덜란드로 갈 수 있도록 고종의 친서를 소지하고 일본으로 이동하는 기만작전을 펼쳤었다.

 

 

그러나 을사조약 체결이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음을 폭로하려 했던 계획은 일본과 동맹외교를 맺고 있던 영국의 방해로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이준열사는 오열하며 타국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고종황제가 폐위되었다.

 

 

『이준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며, 세상을 떠나기 전날 의식을 잃은 것처럼 잠들어 있었다. 저녁 때 의식을 되찾아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 나라를 구해주소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탈하려 합니다”하면서 가슴을 쥐어뜯다 숨을 거두었다.』

 

사적 위치 :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교육원(강북구 수유동 535-353)에서 둘레길 따라 도보로 5분 거리

 

종교개혁 박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