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선교회 서울연회연합회 <2> 운영계획서의 기초 청장년선교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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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2월 청장년운동의 방법론이 될 만한 강의를 듣기 위해 슈메이커 여사를 모시고 간담회를 가졌다. 1968년 1월에는 제2대 제3대 회장을 역임하신 박우승 장로님의 공로로 ‘감리교청장년운동선언문’을 채택하고, 이후 전국 감리교회에 공포하여 감리교 청장년 운동을 밝히게 되었다.”
– 제1대 홍승민 전국회장 (당시 현역장교/아현교회)
“당시 임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는 제2대와 제3대 전국연합회 회장을 연임하면서, 청장년회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힘썼다. 1969년 8월, 『청장년운동선언문』을 제정하여 반포하고, 지역순회예배를 확대하면서 회원조직을 정착시켰다.”
– 제2대 제3대 박우승 전국회장 (원로장로/남산교회)
▲ 반세기 청장년선교회의 기초가 마련된 것은, 당시 현역 육군장교였던 청장년회 제1대 홍승민 전국회장(사진좌측)의 업무추진력과 제2대 제3대를 연임한 박우승 전국회장(사진우측)의 신학적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 남산교회 박우승 장로는 감리회 임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될 지도자로서 – 연세대 신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콜럼비아대학교 명예교육학박사와 미드웨스트대학교 대학원 기독교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교육자로서, 온양한올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1960년 약관 26세의 나이에 장로가 되어, 감리교단(청장년회 전국회장, 남선교회 전국회장, 장로회 전국회장)은 물론 84세 현재까지 교파를 초월하여 평신도단체를 이끌고 있는 노장(老將)이다.
▲ 청장년회 10년사 「평신도선교정보」에 수록된 ‘청장년운동선언문’ 1969년 제정・공포되었다.
청장년선교회 서울연회연합회 ‘운영계획서’를 펴면 제일 처음으로 나오는 시작이 ‘청장년선교선언문’이며, 1987년 선언된 ‘청장년선교선언문’은 1969년 공포된 ‘청장년운동선언문’을 모태로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선교적 실천강령’으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오늘날 청장년선교회 총회와 이취임식 등에서 낭독되는 청장년선교선언문. (1987년 발표)
“1984년 2월1일 청장년 증경회장과 임원 등 10여명이 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 청장년운동선언문은 원문 그대로 보관하고, 현 시대에 맞는 내용을 현 임원들이 신학적, 교단적, 성서적 측면에서 자문을 받아 증경회장단과 협의를 거쳐 작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2월28일 16년 동안 이어온 ‘청장년운동선언문’을 시대에 맞게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에 이바지하도록 수정준비모임을 가졌다.”
– 1983년 제16대 이호남 전국회장 (원로장로/상도교회)
“21C 조국과 세계를 바라보며 역사의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청장년운동선언문’에서 ‘청장년선교선언문’을 기초하고, ‘운동’에서 ‘선교’ 지향적 청장년 상을 구현하려 노력하였습니다.”
– 1991년 제23대 이강전 전국회장 (시무장로/성산교회)
청장년운동선언문과 청장년선교선언문은 모든 정책과 사업을 입안하는 데 근본이 되는, 감리회 청장년의 ‘신앙고백’이며 ‘행동강령’이다. 따라서 모든 주요 행사에서 낭독되고 청장년선교회가 발간하는 모든 책자의 첫머리에 삽입되며, 격식을 갖춘 예배 순서지에 반드시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 청장년회 초대 선배들은 사업과 정책 방향에 앞서, 먼저 청장년회의 정체성을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로서 2백 페이지에 달하는 ‘청장년운동선언문’에 대한 해설서를 남겨놓았다. 이에 반해 오늘날 청장년선교회는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조직을 운영해왔는지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네가 네 하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너희 자녀를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
– 호세아서 4장 6절
종교개혁 박은석 기자